‘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1924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의 일이 됩니다. ‘반달’이라는 노래가 세상에 나온 게 바로 그 해 입니다. ‘반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큰 노래입니다. 근대 창작 동요사의 ‘효시’, 그러니까 근대 동요로는 첫 번째가 되는 노래이지요. 


노래말과 멜로디는 윤극영씨가 지었습니다. 그는 그 즈음 동요 단체인 ‘다알리아회’를 조직해 어린이 노래의 창작 운동을 본격화합니다. 그때 나이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1927년 간도로 옮겨 갈 때까지 그는 동요 운동의 일환으로 100여 곡의 동요를 소개합니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돋는 나라’라는 동요 ‘따오기’,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로 이어지는 ‘고드름’,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로 잘 알려진 ‘설날’ 모두의 멜로디를 윤씨가 썼습니다. 


매사가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쉽게도 이 동요 운동가는 훗날 친일 논란에 휩싸이고 맙니다. 


1940년대 간도에서 항일 세력을 탄압하는 친일 단체 ‘오족협화회’에 가입해 활동한 전력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고 말지요. 곧 끝날 줄 알았던 일본의 식민 지배가 30년 넘게 이어지는 걸 보면서, 앞으로도 이런 체제가 영원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일까요?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청년 본연의 순수미가 차츰 퇴색되어갔던 걸까요? 유족들은 여전히 이 같은 논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증이 불충분하고, 시각이 일방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지요. 


아무튼 1920년대의 동요 운동은 매우 거셌습니다. 방정환, 윤석중 등이 이 시기 주옥 같은 노래를 쏟아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고향의 봄’도 그때 나옵니다. 홍난파가 1926년 작곡한 노래로, 작사가 이원수는 당시 14살짜리 아이였습니다. 10대 아이가 쓴 시에 홍난파는 고운 멜로디를 입혔지요. 


1930년대 들면 동요집이 수시로 출간됩니다. 윤복진, 강소천 등 시인들의 시도 자주 동요가 되었습니다. 신춘문예전에는 아예 ‘동요’라는 출품 분류가 따로 존재하기도 했죠. 이런 흐름은 1960년대까지도 쭉 이어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수천, 수백년 전에도 동요는 줄곧 있었다는 게 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지역별 전승 동요라는 게 있습니다. 함경북도에는 ‘해야 해야 붉은 해야/ 김칫국에 밥말아 먹고/ 장구치고/ 나오너라’라는 동요가, 제주도에는 ‘아버지는 덩굴동이/ 어머니는 잎동이’란 동요가 전승되어 옵니다. ‘자장 자장 자장 자장’으로 노래되는 ‘자장가’도 전승 동요입니다. 누가 압니까? 이들의 나이가 수백 살 혹은 수천 살일지 말입니다.


동요가 예로부터 중요히 취급됐다는 추정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참요(讖謠)라고 해서, 왕실 혹은 권력이 개입해 이를 만들고 보급했다고 의심할 만한 노래들이 제법 있습니다.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아이들을 시켜 부르게 했다는 ‘서동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위 등극을 예언했다는 ‘목자득국(木子得國)’ 모두 참요적인 동요가 될 것입니다.


1940년대 일제가 우리네 동요의 보급을 막고, 대신 전쟁과 문물을 찬양하는 주입식 창가를 쏟아내려 했다는 점도 동요를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려 했던 흔적일 터입니다. 고무줄 놀이를 할 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무찌르자 오랑캐’ 류의 노래가 녹아 든 것에도 모종의 의심이 가능합니다. 


민간어린이집 연합 졸업식이 열린 26일 오전 서울 성동구청 대강당에서 재원 어린이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20일 가수 싸이의 노래가 미국 어린이 엔터테인먼트 채널의 ‘키즈 초이스 어워드’에서 미국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강남스타일’은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칼리 래 젭슨 등과 경쟁한다고요. ‘에~ 섹시 레이디~ 우! 우!’하고 따라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뻐해야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안타까워해야 할까요. 


아이들의 노래가 너무 없습니다. 방송사마다 성황리에 열리던 동요대회도 눈을 씻고 찾아 보기 힘듭니다. 대신 아이들이 어른들의 노래를 부르는 기이한 오디션이 넘쳐납니다. 아이들의 노래를 빼앗는 대중음악이 때로는 매우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Posted by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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