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김수희의 애모’)

 

그때가 19959월이었습니다. KBS <열린음악회>가 열리던 부천 가톨릭대 운동장에는 초가을 저녁을 만끽하러 나온 동네 주민들로 가득했지요.

 

이날 객석에는 김수환 당시 추기경이 앉아 있었습니다. 추기경은 곧 아니운서의 요청으로 등대지기라는 동요 하나를 부릅니다. 관객들은 흥에 겨운 나머지 추기경에게 앵콜” “앵콜”(표준어는 앙코르’)하며 한 곡을 더 청합니다. 추기경은 수줍어 하다가 이내 노래를 하나 더 부릅니다. 바로 김수희의 트로트 애모입니다. 추기경이 대중가요를 외부에서 부른 건 그때가 처음입니다. 관객들은 다시 너나 없이 합창을 하더니, 손과 몸을 흔들며 즐거워 하였습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

이후 신자들은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한 자리라면 어김없이 노래 하나를 불러달라 보챘다고 합니다. ‘애모외에 노사연의 만남’,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왕왕 부르며 사람들과 마음과 웃음을 나누곤 했다지요. 빈자들을 자주 찾았던 김 추기경은 항상 친대중적인 면모, 사회참여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던 분입니다. 그가 불렀던 대중가요는 그래서 더 다정합니다.

 

서울 특별시 중구 명동21번지 명동주교좌성당’. 사람들은 이 곳을 세칭 명동성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898년 완공된 뒤 지금에 이르는 한국 가톨릭의 상징이자 총본산입니다. 1970~1990년대 들어 명동성당가톨릭의 종교적 범주를 넘어섭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습니다.

 

3, 유신, 5공 시절, 법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던 다수의 사람들이 명동성당에 몰려 들었습니다. 억울하지만 호소할 때도 마땅치 않은 힘없고 겁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요. 명동성당에 들어서면 무시무시한 공권력도 함부로 자신들을 잡아들이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그리하였습니다. 성역이랄 것도 없이 넓은 땅에서 정말이지 한 뼘 정도 되는 숨 쉴 정도의 공간이었을 겁니다.

 

법은 절대적인 정의라 할 수 없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것은 다시 바뀌곤 합니다. 법이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조정되고 변경되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법은 언제나 만능이고, 언제건 사람을 우선한다는 말, 그건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수천년 역사에서의 공권력은 누군가의 도구로 이해될 때가 더 많습니다. 법과 공권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 하는 사람들 역시 보듬겠다는 걸 김 추기경은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강한 힘이 겁박할 때마다 번번히 나를 먼저 밟고 가라고 버텨 서곤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명동성당에 1990년대 두 차례 공권력이 들어갔습니다. 당시 김 추기경의 어조는 강경했습니다. “공권력이라는 명목으로 힘을 행사해서 침해한 것은, 공간적인 의미의 명동성당 혹은 성역만이 아니라 명동을 사람들에게 피난처로 여기게 했던 도덕적인 힘, 바로 그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김 추기경도, 교인들에게도 불편한 게 한두 가지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질서를 조롱하고 있는 일부 미디어들의 묘사처럼, 성당을 들고 나는 정문 앞은 항상이고 너저분했고, 명동성당 내 화장실은 늘 씻지 못한 이들, 쫓겨 들어온 이들로 북적였습니다. 한적하고 우아한 성스러운 마당을 애써 내어준 그 큰 마음은 사실 쉽지 않은 것이었을 겁니다. 명동성당은 잘 따져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빚진 게 퍽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교황의 즉위식이 19일 바티칸에서 열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하나 하나가 다시 많은 걸 떠올리게 합니다. 소박하고 검소한 교황이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는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한다고요. 예전의 교황처럼 보통은 사람들이 잘 못 알아 듣는 라틴어로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그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끔 이탈리아어로 즉위사를 했다지요.

 

특히 가난하고 약하며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따스히 감싸야합니다.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를 책임지는 이들에게 부탁합니다. 파괴와 죽음의 징조를 허용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생각지 못 하고 지나치기 쉬운 궁핍한 이들에게 사랑의 관심을 보여주어야합니다.”

 

새 교황의 즉위를 보면서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애모가 자꾸 떠오르는 건 왜 일까요? 엉뚱한 상상해봅니다. 새로운 교황이 대중 앞에서 팝송을 한 곡 불러 주는 그런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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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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