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은어’가 꽤 많습니다. 음반을 두고 제작사 사람들은 ‘따블’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정확한 어원은 아무도 알지 못 합니다. 과거 LP가 양면으로 제작돼 있어서 ‘더블(double)’이란 용어를 갖다 쓰다가, 이게 차츰 ‘음반’을 상징하는 말로 굳어진 게 아닌가 유추해봅니다. 


‘가이드(guide)’도 ‘업계 용어’입니다. ‘가이드 떴어?’ ‘가이드 줘봐’ ‘가이드는 좋은데 말이야’ 뭐 이런 식으로 사용하지요. 가이드는 일종의 ‘가녹음분’ 혹은 ‘가녹음을 하는 행위’를 지칭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가이드’ 대부분은 좀 엉뚱했습니다. 배꼽을 잡고 깔깔 웃었을 수도 있습니다. 가사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녹음된 게 대부분이라, 매우 기이했거든요.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세임 투 마이 라이프, 온리 포 더 원더 브레이킹 타임….’ 






주로 말도 안 되는 영어와 일본어를 의미 없이 나열할 때가 대부분이지요. 


왜 굳이 영어나 일본어를 쓰냐고 물어보면 “그게 좀 더 멋있어 보이지 않느냐”는 대답이 나옵니다. “밑에 받침이 없는 언어들이 노래를 좀 더 유려하게 들리도록 한다”고 말하는 작곡가도 있었습니다. 영미팝, 일본 가요를 무조건 높이 평가하던 예전 가요계의 풍경 중 하나일 겁니다.


‘쿵따리 샤바라’라는 노래 아시죠? 클론이 처음 이 노래의 가이드를 김창환 작곡가로부터 받았을 때는 정말 볼품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땅한 가사도 없이 김창환 작곡가가 그저 흥얼거리는 노래가 나즈막히 흘러나왔다고요. 가이드만 듣고 보면 흥겨운 노래가 아니라 듣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곡이었다고 합니다. ‘쿵따리 샤바라’라는 생뚱맞은 가사 역시 가이드속에 있던 흥얼거림의 일종이었답니다. 


가이드의 세계도 차츰 변합니다. 요즘은 가이드 송이 자꾸만 완벽해지고 있습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가수와 제작사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선 더욱 완벽한 ‘가이드’를 요구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기타, 드럼, 색소폰, 베이스,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따로 섭외할 수고로움도 필요 없습니다. ‘시퀀싱’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음악 편집 프로그램을 열고, 여기에다 수백·수천 가지에 이르는 가상악기를 불러 들이면 그만입니다. 가사도 완성돼 있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가이드’ 녹음을 주로 맡는 ‘가이드 보컬’이라는 사람들의 수준도 매우 놀랍습니다. 프로 못지않게 노래를 잘 부르지요. 케이윌이라는 가수는 독보적인 가이드 보컬 솜씨로 정식 가수가 된 인물이지요. 플라이투더스카이, 동방신기, 비의 가이드 송을 주로 맡아 불렀습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대체 누구냐는 궁금증을 일으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가이드 보컬을 거쳐 가수가 된 사람들이 요즘 들어 부쩍 많습니다. 그룹 스피카의 김보아가 이효리, 가수 케이준은 싸이의 노래에서 각각 가이드 보컬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노래 잘하는 아이투아이의 멤버 수혜도 수년간 가이드 보컬을 했습니다. 


지난해 Mnet <슈퍼스타K4>에서 앨리스라는 여성은 방송 중 백지영의 ‘그 여자’를 부르다 말고 펑펑 울어버리더군요. 그 노래의 가이드 보컬이 바로 자신이었다면서요. 



Mnet 슈퍼스타K4



정작 자신의 목소리를 대외로 알리지 못한 채 가려져 있던 이들의 마음이 대체로 이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만 보면 세상 일 뒤에는 대부분 지난하고 고단한 과정, 그리고 여러 주변의 조력자가 있습니다. 너무 한 곳에만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것, 이건 함께 빚어낸 여러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합니다. 


요즘엔 가이드 보컬들을 유심히 보곤 합니다. 슬그머니 음료수 한 병을 놔놓고 올 때도 있고, 곧 음반 나와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덕담도 부러 건넵니다. 오늘도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을 청춘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을 조용히 응원해봅니다.


Posted by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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