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불어닥친 ‘세시봉’과 ‘나는 가수다’ 열풍은 한동안 잊혀졌던 가수와 노래들을 차례로 불러냈다. 1970년대 대학교정을 휩쓸었던 통기타가 부활했고, 수십년 전 노래들이 음악차트를 휩쓸었다. 이로 인해 ‘아이돌’과 ‘댄스음악’ 일색이던 음악시장이 모처럼 풍성해졌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등 ‘세시봉’ 가수들은 인기리에 전국투어 콘서트와 미국공연을 펼쳤다. 이후 각자 활동하던 중견가수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드는 ‘연대’가 활발해지고 있다.

‘80년대 가수’로 통칭되는 이치현(56)·강인원(55)·권인하(52)씨가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더 컬러스’(The Colors)도 그중의 하나다. 1980년대는 유독 다양한 음악이 공존했던 시대. 영원한 ‘가수왕’ 조용필씨를 필두로 록계에선 산울림·송골매·부활·시나위·백두산이 적지 않은 팬을 몰고 다녔다.
또 시인과촌장·들국화·신촌블루스가 언더그라운드를 휩쓸었다. 전영록·박남정·김완선씨가 댄스풍 노래로, 이용·이문세·이승철·이선희·변진섭씨가 발라드풍의 노래로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 나훈아·현철·주현미·방미·이은하씨 등은 트로트풍 음악으로 시장을 주름잡았다.

1980년대 가수 권인하, 강인원, 이치현씨(왼쪽부터)로 구성된 ‘더 컬러스’. 강씨는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와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이씨는 ‘집시여인’과 ‘당신만이’, 권씨는 ‘갈테면 가라지’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각각 히트시켰다. /김영민 기자


그 한가운데서 이씨는 밴드 ‘이치현과 벗님들’로, 강씨는 포크계의 싱어송라이터로, 권씨는 선 굵은 솔(Soul)로 인기를 얻었던 가수들. 1970년대에 음악다방 ‘세시봉’이 있었다면, 1980년대에는 라이브카페 ‘숲속의 빈터’가 있었다. 강인원씨는 “왕년에 ‘숲속의 빈터’로 상징되는 카페에서 활동한 가수들끼리 뭉쳐보자면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솔직히 걱정부터 했습니다. ‘개성도 장르도 서로 다른데 어쩌지?’하면서요.”(이치현) “시대가 크로스오버를 요구하고 있고, 중견가수 역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강인원)

이들 세 가수는 2000년대 초반 ‘제2의 전성기’를 경험한 바 있다. 이른바 ‘7080 문화’가 대두되면서 ‘미사리 카페’ 붐에 일조했다. 이치현씨는 미사리(경기도 하남시)에서 처음으로 라이브 카페 ‘산타나’를 열었던 인물. 이후 이종환씨의 ‘쉘부르’, 윤시내씨의 ‘열애’ 등 50여개 남짓한 카페가 탄생해 불야성을 이뤘다.
그러나 ‘미사리 문화’는 10년 만에 몰락했고,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권씨는 “미사리에 과도한 상업성이 개입하면서 음악에 대한 진정성이 사라졌다”며 “당대의 음악이 경계해야 할 것도 지나친 상업주의”라고 일침을 놓았다.

가요계에는 이들 외에도 ‘연대’가 활발하다. 가수 박학기씨와 강인봉·박승화·이동은씨 등 1990년대 포크 뮤지션들도 ‘포커스’(4CUS)를 꾸려 활동 중이고, 1972년 전후 태생의 가수들인 이세준·김원준·배기성·최재훈씨도 ‘엠포’(M4)를 결성해 좋은 성과를 거뒀다.

‘더 컬러스’가 한 목소리를 내기까지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각자의 개성을 뭉개서 버무리고, 연습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로 희생해야 했다. 당초 팀에 합류했던 민해경씨가 자녀의 미국 유학 등을 이유로 팀을 떠나기도 했다.

지난 7월17일 수원에서 열린 <더 컬러스의 콘서트>는 성황을 이뤘다. 덕분에 24일 서울 악스코리아, 10월8일 부산 MBC 롯데아트홀, 23일 대구 수성아트피아로 공연이 이어진다. 김완선, 남궁옥분씨 등이 게스트로 나온다. 강인원씨는 “우리 팀은 울타리가 없다. 동시대 가수들이라면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면서 “지금의 작은 움직임이 가요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osted by 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