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시대 투영되는 노랫말에 ‘19금’의 의미는

입장을 한번 바꿔보죠. 독자께서 대중음악 소비자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라고 상정해보잔 말입니다.

곧 음반을 내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노래에 담겠습니까? 연애에 한창이라면 이러쿵저러쿵 사랑 이야기를 노랫말로 써내려가겠지요. 이별 때문에 헛헛하다면 떠난 ‘그 이’를 그리워할 수도, 그게 아니라면 ‘세상이 어디 그뿐이더냐’며 악다구니를 부릴 수도 있겠네요.

사사로운 감정 말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말하고 싶은 분도 제법 있으리라 봅니다. 자, 어떤 소재를, 어떤 비유로 노래로 풀어가겠습니까? 이 같은 ‘입장 바꾸기’는 음반을 듣는 유용한 감상법 중 하나입니다. 근착 앨범인 자우림의 정규 8집 <음모론>(陰謀論)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쏠쏠한 방식입니다. 곡 대부분을 만들었던 김윤아는 어찌했건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이고, 우리네 시선과 그리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DB

자우림은 음반 제목을 ‘음모론’으로 지었네요. 앨범에는 제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노래도 한 곡 발견됩니다. 조금은 슬픈 곡조의 ‘EV1’이란 노래입니다. 김윤아는 노랫말을 이렇게 썼습니다.

‘기묘한 얘기 하나가 있었어/ EV1이라 불리던 차의 얘기/ 이제쯤 너도 아마 알고 있겠지만/ 이 세상은 이상한 얘기로 가득하지/ 아직은 달릴 수가 있었는데/ 사막 한가운데로 버려진(중략)/ 거짓말이라고 해줘.’

‘EV1’은 꽤 유명한 자동차였습니다. 다큐멘터리 <누가 전기 자동차를 죽였나>(2006)에 등장하는 그 전기 자동차 이름이 ‘EV1’이었죠. 1996년 시판돼 ‘혁신적인 차’의 대명사가 됐던 EV1은 훗날 전량 수거돼 사막 한가운데 묻혀버립니다. 석유 자본가들을 의심하는 음모론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자우림의 노래 ‘EV1’은 후반부 톤을 바꿔 다음과 같은 가사로 흘러갑니다. ‘증오와 몰이해로 살인을 저지르고/ 타인의 불행 아직 오지 않은 고통은 내 것이 아니니까/ 아랑곳하지 않지….’

세상에는 많은 음모론이 있습니다. 내내 미심쩍고 찜찜한 일,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그런 일이 음모론의 좋은 소재가 되곤 합니다.

영화에서건, 음악에서건 작가의 의도를 똑 부러지게 읽어 내려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우림이 뭘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섣불리 단정해서도,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다만 그렇다는 겁니다. 독자분들이 싱어송라이터고 세상을 노래해야한다면 대체적으로 어떤 곡을 쓸지 그게 궁금하다는 겁니다.

앨범엔 아찔한 노래가 또 있습니다. ‘핍 쇼’(PEEP SHOW)입니다.

‘악취는 전파를 타고 가지 않으니/ 뉴스페이퍼 텔레비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 기름진 얼굴과 욕망에 흐려진 눈도/ 당선과 권한으로/ 위인전과 동화로 둔갑을 하지/(중략)/ 뉴스페이퍼, 텔레비전, 달콤한 거짓말/ 아마 나만 미친 건 가봐….’

혹시 몰라 사전을 뒤적여보니 ‘핍 쇼’에는 두 가지 뜻이 있네요. ‘1. 요지경 상자(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장치가 되어 있는 상자), 2. 핍 쇼(돈을 내고 작은 방 같은 곳에 들어가서 창을 통해 여자가 옷 벗는 것을 구경하게 되어 있는 것).’

노래를 찬찬히 들어보니 전자(前者)가 맞아 보입니다.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군요. 때마침 우리네 미디어가 처한 ‘불편한 진실’이 요지경 같다 여겼던 요즘이었습니다.

음반 심의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솔직히 노래에 ‘취한다’는 표현이 좀 들어갔다는 이유로 그리 까다롭게 굴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저 술기운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겠지”라는 취지의 어느 인터넷 댓글도 본 적이 있습니다.

대중문화는 시대의 자화상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세상과 솔직하게 대면해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자우림의 노래도,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에도 시대는 투영됩니다.

Posted by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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