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시대의 변종 ‘산울림’ 35주년 김창완 을 만나다
ㆍ사고로 잃은 막내동생 빈자리 커… 산울림 멈췄지만 독창적 음악 멈추지 않아

벌써 35년. ‘아니 벌써’(1977)로 데뷔한 ‘산울림’의 등장은 대한민국 음악지형도를 바꾼 사건이었다. 김창완, 창훈, 창익으로 결성된 3형제 밴드는 팝에만 열광해왔던 당대 젊은이들의 입맛을 하루아침에 변화시켰다. 구어체 노랫말, 파격적인 멜로디, 화려한 연주실력까지 비로소 제대로 된 한국 토종밴드의 출현이었다.
그 당시 맏형 김창완(58)의 나이가 스물세 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가지 마오’ ‘독백’ ‘청춘’ ‘회상’ ‘내게 사랑은 너무 써’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등 이후 산울림이 발표한 레퍼토리가 말해주듯 그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2일 오전 서울 목동 SBS사옥 1층 로비. 김창완은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 신발에, 물빠진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머리칼은 언제나처럼 ‘아방가르드’했다. 변한 게 있다면 슬픔의 무게가 느껴진다는 거였다.

“35년치 세월의 무게가 따로 있을 것 같지만, 하루의 무게와 다를 바가 없네요. 산울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빚만 진 느낌입니다.”

올해로 데뷔 35주년을 맞은 3형제 밴드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 1977년 ‘아니 벌써’로 데뷔한 산울림은 기성 가요곡과 음악적 문법 자체가 달라 영미 밴드만을 우러러보던 당시의 음악계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정지윤 기자

데뷔 35주년을 마냥 축하할 수 없는 건 ‘막내의 빈자리’ 때문이다. 형제가 함께 모여 30주년 기념 공연을 가진 다음해(2008년 1월)에 막내 김창익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신곡 발표도, 공연도 멈춰섰다. ‘산울림’ 대신 ‘김창완 밴드’가 따로 꾸려졌다. 2008년 11월 나온 ‘김창완 밴드’ 첫 앨범의 음악은 단단히 화가 난 투였다. 김창완은 “그 앨범은 말하자면 분노의 유산”이라고 했다.

산울림의 35주년이 유야무야 지나가자 안달이 난 쪽은 후배들이었다. 크라잉넛을 필두로 뮤지션 예닐곱 팀이 헌정 앨범 <산울림 리본(Reborn)>을 제작 중이다. 김창완은 “(후배들의) 노래를 들어봤는데 재미나게 작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데뷔 무렵엔 유독 일화가 많았다. 형제들은 ‘무이(無異)’라는 팀으로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에 출전, 예선 1위를 차지했지만 김창완이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그 뒤 김창완은 국민은행 입사시험을 포기하고 이미 만들어둔 150여곡 중 일부로 산울림 음반을 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에 정작 우리가 더 놀랐죠. 우린 스스로 ‘변방의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무이’라는 팀 이름도 ‘이질적일 것’이라는 우려를 내포한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팀 이름이 ‘당신들과 다르지 않다’였을까요.”

대학가요제 출전곡 ‘문 좀 열어줘’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다. 여자 집 앞에서의 연애 스토리로 읽히겠지만, “사실은 세상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가치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소통해달라고 치는 고함의 ‘카무플라주(camouflage·위장)’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덧붙여 산울림의 청자들에게 늦게나마 알려야 할 몇 가지 ‘팩트’도 소개했다. ‘아니 벌써’의 원곡은 지금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김창완은 “그땐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사전 심의가 있었고 1집 수록곡 전부가 ‘애상’ ‘퇴폐’ 등의 이유로 심의에 걸려 변형됐다”며 “ ‘아니 벌써’는 밤새 놀고 난 뒤 맞은 아침 풍경을 묘사한 곡인데 희망찬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1집에 수록된 결고운 노래 ‘소녀’의 원제는 뜻밖에도 ‘늑대’였다. “너무 열이 나서 제목과 가사에 조롱조로 반대말을 집어넣어 재심의를 받았다”며 “후배 인디밴드가 ‘소녀’에 다시 반어적 의미를 부여해 새롭게 불러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산울림은 기존 음악스타일을 학습한 밴드가 아닌 것은 분명해요. 데뷔 시절 인터뷰에서 ‘우리 음반이 나오면 AFKN을 더 이상 안 듣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또 당시 가요계의 틀도 우리에겐 기성복처럼 불편했어요. 부사나 감탄사가 튀어나오고, 문장이 수시로 도치되는 것은 기존의 정형성을 해체해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거죠. 무지로부터 나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 덕분에 독창성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산울림이 형제로 구성된 조직이어서 용기 있는 음악을 했을 수도 있죠.”

김창완은 “우리 스스로도 변화의 주체가 누군지,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 것인지 그땐 몰랐다”면서 “차후에 음악의 중심이 기성에서 젊은 세대로 이양되고, 젊은이들이 스스로 생산한 음악을 소비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 그는 막내 창익의 선한 웃음이 그립다면서 갑자기 휴대폰을 열었다. ‘하늘나라’라는 폴더 속에 아버지, 소설가 박완서, 막내 등의 전화번호가 보관돼 있다. 동생이 기르던 고양이, 영정, 관 속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는 동생의 사진 등을 넘겨보다가 “하하하” 웃었다. 기막힘을 에둘러 표현할 때 내는 웃음이다.

“산울림의 음악은 나머지 두 명이 모여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글이야 ‘아’ 다르고 ‘어’ 다르지만, 음악은 ‘아’와 ‘아’도 다른 겁니다. 그러지 말고 홍대 연습실로 갑시다. 2시에 밴드 연습이 있어요.”

김창완은 산울림 35주년을 기념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대신 오는 16일 ‘김창완 밴드’의 세 번째 음반 <단 잇(Darn it)>을 발표한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연습실에 이상훈(키보드), 최원식(베이스), 강윤기(드럼) 등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곳에서 새 음반의 노래 전곡을 들어볼 수 있었다.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녀도/ 점점 모르겠네/ 내가 언제 어른이 된 거지’로 시작되는 ‘단 잇’은 청년 실업 등의 문제로 힘든 세태에 놓인 청춘을 반어적 상황으로 위무하는 곡이다. 사회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기보단 노래 속 화자(話者)가 스스로 던지는 질문처럼 쓰였다. 간단한 코드에 화법도 실험적이다. 침대 위 잠든 여성을 만지고 싶다는 ‘잠꼬대 소리’는 몽롱했고, ‘내 마음의 강’은 펑키했다. ‘추억은 꺼내는 게 아니야’란 후렴구가 인상적인 ‘녹슨 자전거’에선 얼핏 산울림 특유의 서정성도 목격된다. 연주곡 ‘아리랑’에선 록악기가 심포니사운드를 냈다.
김창완은 “유화처럼 여러 번 덧칠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모여 ‘원테이크(끊지 않고 한 번에 녹음하는 방식)’로 갔다”며 “김창완 밴드가 이번 앨범으로 제법 색깔을 찾은 듯한데 사람들은 어찌 들을까”라고 되물었다. ‘김창완 밴드’는 산울림의 음악을 계승하지만, 오늘날과 새롭게 교류하는 또 다른 이름의 밴드다. 1시간이 지났을까. 킥을 힘껏 밟아대던 드러머 강윤기가 소리쳤다.

“5분만 쉬었다 합시다.” 5분간 쉰 산울림, 아니 김창완 밴드의 음악이 사뭇 기대된다.

Posted by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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