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병정들이 전진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 

소꿉놀이 어린이들

뛰어와서 쳐다 보며

(중략)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독자 여러분들 께서도 잘 아시는 노래일겁니다. ‘라 쿠카라차’라고요.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이 노래를 배웠고 따라 불렀을 겁니다. 뜻도 모르고 불렀던 노래는 쉬우면서도 흥겨운 멜로디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이었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프다는 느낌 또한 있었던 것같습니다. 


어른이 돼서 뒤늦게 화성을 들여다보니 노래는 1도, 4도, 5도로 구성된 장조곡이더군요. 대개 장조는 밝고, 단조는 슬프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장조곡은 이상하게도 애처로운 빛깔을 머금은 듯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실터이지만, 스페인어로 된 노래 제목 ‘라 쿠카라차’의 뜻은 ‘바퀴벌레’입니다. 영어로 바퀴벌레를 일컫는 ‘코크로치’(cockroach)와 어원이 같지요. 우리들이 어렸을 적엔 미처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노래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노래 ‘라 쿠카라차’의 역사는 꽤 깊답니다. 노래의 멜로디는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인 15세기 무렵 스페인 지역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노래가 큰 생명력을 가지게 된 것은 뜻밖에도 태어난 곳이 아니라 새로이 옮겨가 자랐던 곳, 남미 멕시코였습니다. 노래는 보통 깊게 노여워하거나 슬퍼할 일이 있을 때, 그리고 크게 기뻐할 일이 있을 때 더 빨리 자라나곤 합니다. 


1821년 스페인의 식민지로부터 비로소 독립했던 멕시코라지만, 곧 독립의 주역들이 영광을 누리는 시대를 맞이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의 해방 이후 시대가 딱 이러했지요. 


탐욕한 이들은 시민들이 미처 주인으로 자리잡기 전, 온 나라를 제 집인 양 헤집어 놓습니다. 100년도 채 못되어 멕시코의 사람들 중 정작 땅을 소유한 사람은 거의 사라집니다. 1910년대까지 국토의 97%가 대주주, 혹은 외국계 가문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겉으로는 다리도 놓이고 길도 닦이고 꽤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부와 권력, 교육의 기회는 소수에게 점점 집중되어갑니다. 그럴 때면 꼭 시민의 자유, 출판의 자유 또한 멈추어 섭니다. 째깍째깍, 폭탄이 터질 일만 남았습니다.


결국 1911년 이후 각지에서 농민 혁명이 일어납니다. ‘라 쿠카라차’는 누구라도 다 불렀던 노래였던 것같습니다. 농민군세력, 혁명세력, 반혁명세력, 군벌세력 모두에게 약간씩 유리한 가사의 노래가 조금씩 다 발견되었습니다. 이 작은 한국에서도 ‘아리랑’ 하나가 다른 식으로 불러진 걸 보면 그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거라 봅니다. 


‘라 쿠카라차’의 여러 버전 중 가장 널리 퍼졌던 노래가 있는데, 바로 혁명세력, 특히 멕시코판 의적으로 불리곤 했던 ‘판초 비야’ 버전이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웃음을 전해주네

그는 바로 셔츠 없는 판초 비야

까렌사의 군대는 도망을 쳐버렸네

판초 비야가 오고 있기 때문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판초 비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합니다. 민초들의 반란이라하면 몸서리부터 치는 일정한 세력들은 그를 괴팍한 난봉꾼 정도로 폄하해버리고 맙니다. 


“훔치되 부자의 것만 건드려라”고 말하던 판초 비야는 산적에서 농민군을 이끄는 혁명세력이 된 인물이기에 행적이 그리 젊잖고 매끄럽지 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농민들이 바라본 ‘판초 비야’는 속시원한 리더가 분명했을 겁니다. 핍박, 그걸 이겨내는데 고매한 인격, 예의, 격식 따위가 대수겠습니까.


‘라 쿠카라차’를 두고 바퀴벌레처럼 생겼던 판초 비야의 낡은 차를 지칭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대체로는 액면 그대로의 ‘바퀴벌레’로 받아들여집니다. 스스로를 보잘 것없는 이들이라 여겼던 농민들이 자조적으로 부른 말, 그게 ‘라 쿠카라차’라는 설명이랍니다. 그러고보니 별 볼일 없는 것같지만 또 수천 수만년의 세월을 질기게 버틴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묘한 생명체가 바로 ‘라 쿠카라차’입니다. 스스로를 비하하는 듯 하지만 실은 용맹합니다.


왜 이 노래가 우리나라의 동요책에 실려 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이 노래처럼 각국의 민요가 대체적으로 그리 가벼운 노래일 수만은 없다는 점, 그걸 잠시나마 되새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노래를 어쩌다 들으시면 100년여전 신산하고 팍팍했던 멕시코 농민들의 삶, 그리고 서글프지만 강인해보이고 싶었던 눈매도 잠깐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멕시코는 음악 지형도에서 매우 독특한 곳입니다. 흑인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으면서 독창적인 음악 형태를 키워오던 곳이었습니다. ‘마리아치’(Mariachi)라고 하는 멕시코 특유의 밴드 문화를 떠올려보시면 알 겁니다. 멕시코 복장에, 챙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쓴 ‘싼초’들이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부르는 그 독특한 밴드가 바로 ‘마리아치’입니다. 슬프지만 슬프려 하지 않는 것도 이 지역 음악의 특징이었죠. ‘라 쿠카라차’는 그래서 슬프면서도 동시에 흥겨웠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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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