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말, 그건 만들기 나름입니다. 실체는 생각보다 작거나, 혹은 존재조차 않는데, 과장되어 표현될 때가 제법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이런 걸 두고 “언어는 형태이지 실체가 아니다”라고 조언해줍니다. 가요계에도 ‘11월 괴담’이라는 게 있습니다. 들어보면 그럴싸하긴 합니다. 시작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11월 1일, 서울 강변북로에서 스물다섯의 꽃다운 가수 한명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이름은 유재하였습니다. 3년 뒤인 1990년 같은 날엔 김현식이 간경화로 세상을 떠납니다. 나이 젊은 음악가 두 명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며 사람들이 쑥덕대기 시작합니다. 호사가들은 여기에 가지를 하나씩 덧붙여 갑니다. 누군가는 앞서 2년 전 1985년 11월29일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이름 모를 소녀’의 가수 김정호의 사례도 찾아냅니다. 1995년 11월20일 듀스의 멤버 김성재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일, 2000년 11월9일에는 클론의 강원래씨가 하반신 마비라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일 등도 11월 괴담의 증거가 됩니다. 싸이도 11월 괴담에 일조했다고 합니다. 2001년 11월13일 황수정 히로뽕 투약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 뒤 싸이가 서울 용산경찰서에 대마초 흡연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실제 ‘11월 괴담’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건 2000~2001년 그 사이입니다. 그때에는 제법 떠들썩한 일이 있긴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사건 대부분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합니다. 2003년엔 고현정 이혼, 2005년엔 송강호 음주운전 입건, 신화 앤디 교통사고, 신정환 불법 카지노 도박 입건 등이 ‘11월 괴담’의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하다 하다 안되니 ‘신종 인플루엔자’의 사례까지 11월 괴담에 갖다 붙습니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그렇다고 7월 삼복 더위에 유행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11월 괴담’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 그런 단어를 일으킨 주체는 ‘미디어’라고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11월이 되면 으레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올라섭니다. 왜 그러지 않습니까? 관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11월이 이제 지나갔으니 하는 말인데 2012년 11월을 한번 돌이켜보셨으면 합니다. 


좋은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싸이가 유튜브 검색왕에 올랐고, 마돈나가 펄쩍 뛰어 싸이의 품에 안기기도 하였습니다. 결혼 뉴스는 또 왜 그리 많았습니까? 가수 하하와 별이 화촉을 밝혔고, 원더걸스의 선예가 한 선교사와 결혼을 발표하였지요. 가요계 말고 방송가에서는 소유진·이태성·홍록기가 각각 결혼 소식을 알려오기도 했습니다. 


현상을 언급하기가 마땅치 않자, 이젠 ‘11월 괴담 올해는 없었네’란 식의 글이 인터넷에 왕왕 떠오릅니다. 어떤 노릇인지 없는 걸 없다 하는 것도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돌이켜보면 사회 곳곳이 그럴 것입니다. 현상에 의해 언어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언어에 의해 현상을 왜곡하고 부풀리는 일이 도처에 널려있을 것이란 말입니다. 


잘 찾아보면 그런 단어는 많습니다. 종북좌익 척결, 척결하는데 저는 그 말도 참 ‘거시기’ 하다 여깁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저는 자꾸 우리네 어릴 적을 떠올리게 됩니다. 제가 즐겨보던 애니메이션 <똘이장군>에서의 북쪽 사람들은 모두 ‘늑대’로 묘사되고 있던 그때 말입니다. ‘공비’(공산당 비적떼)소탕, 좌익 ‘척결’(살을 도려내고 뼈를 발라냄)….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지만 우익과 좌익, 우파와 좌파는 모두 가치를 일방적으로 부여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걸 뻔히 아는 미디어겠지만, 도무지 이에 아랑곳하지를 않습니다. 


음악에서의 화음은 대개 몇 가지 어울리는 구성음이 균등하게 소리낼 때 이뤄집니다. 듣기 좋은 화음의 노래인지 불협화음의 노래인지, 그걸 가려 들을 수 있길 소원해봅니다.

Posted by 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