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기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독자 여러분 중엔 아마 이 노래를 모르실 분이 없으실 겁니다. 바로 ‘아리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기 아리랑’입니다.


혹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남북 단일팀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할 때 객석 너머로 넘실댔던 노래 또한 ‘아리랑’이었지요. 10년이 지난 지금 떠올려 봐도, 그때의 장면은 멋졌습니다. 2012년 겨울, 거리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면 언제 또 그런 순간이 오나 싶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꿈꾸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통일 조국이 된다면 ‘아리랑’은 ‘국가’를 선정하는 작업에서 필시 첫 손에 꼽히는 후보곡이 될 것입니다. 들을 넘고 산을 건너 퍼져나간 ‘아리랑’은 애초부터 그 잘난 왕들의 노래가 아니었으니 차라리 좋습니다. 


어느 외국인이 다가와 “아리랑, 아리랑하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요?”하고 묻는 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찌 답하시겠습니까? 


“….”


한국을 알리는 CF에도, 영어로 된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방송사의 이름에도 ‘아리랑’은 들어있지만, 이 질문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의 의미를 제법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랑’의 어원을 둘러싼 설이 너무 많습니다. 


그중 재미난 것 하나가 구한말 흥선대원군 시절 기원설입니다. 경복궁 중건 시절 부역 나온 남정네들이 연인, 아내 등과 헤어져 지내야 하는 처지를 한탄하며 “아리랑(我離娘·나는 님과 헤어졌네)”라 했다는 설입니다. 당시 “원납전 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아이롱”(我耳聾·내 귀가 먹었다)한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해석은 더 있습니다. “아리랑(我利郞·나는 이로운 사람이야)”하며 외쳤던 어느 성리학 유생들의 입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고, 더 멀리 신라시대 ‘알영’이란 사람을 흠모해 부른 노래에서 비롯됐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걸 합하면 아리랑을 둘러싼 설은 50여개를 훌쩍 넘어간답니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대체로 이 ‘아리랑’을 흥을 돋우는 ‘여음’ 정도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닐리리’ ‘강강술래’와 같은 류라는 것이지요.


우리네 예전 노래에 등장하는 여음은 정말이지 다채롭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선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가, 또 다른 노래 ‘동동’에서 보면 ‘아으 동동다리’라 되풀이되기도 합니다. ‘닐리리’는 아마도 어느 얇은 관악기에서, ‘동동’은 어느 타악기에서 유래된 여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방송인 조형기는 기타 소리를 ‘자우지 장지지지’라 표현하고, 클론은 여러 드럼 및 관악기 소리를 합해 ‘쿵따리 샤바라 빠빠빠’라 부르기도 했었지요. 


‘아리랑’, 그것이 의도한 것이 없었다면, 필시 여러 의미를 흡수하기도 쉬웠을 겁니다.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여주아리랑 등 전국 각지에서 울려 퍼지는 수백여 아리랑은 우리네 수많은 삶을 담아 냅니다. 헤어지거나 사랑하는 이야기, 농사 짓는 이야기, 이웃을 돕는 이야기 등을 맘껏 퍼나릅니다. 신민요아리랑 쪽에 가까운 ‘독립군 아리랑’은 조국의 독립을, ‘한글 아리랑’은 한글 보급을, ‘종두 아리랑’은 종두법의 보편화를 각각 노래하기도 했지요. 


그러고 보니 ‘아리랑’ 이게 매우 근사합니다. 들을 넘고 산을 건너 퍼져나간 ‘아리랑’은 풀·바람, 그리고 흙의 노래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너, 그리고 우리의 노래가 되기도 했네요. 


오늘 밤 누군가가 우리의 대표자가 될 것입니다. 일방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가 내는 ‘아리랑’을 고루 들어줄 사람이길 간절히 기대해봅니다.

Posted by 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