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에 보면 ‘용감한 녀석들’이라는 팀이 나옵니다. 좀 ‘오버’스럽긴 해도 힙합이란 음악 장르의 매력을 집어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음악차트에서도 좋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겁니다. 힙합에는 나름의 약속이 있습니다. ‘용감한 녀석들’이 부르는 노래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의 랩 가사도 이를 지켜내고 있더군요.

 

KBS2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에 출연하는 박성광, 신보라, 정태호, 양선일 l 출처:경향DB

‘한숨 대신 함성으로/ 걱정 대신 열정으로/ 포기 대신 죽기살기로….’

 

혹시 보이십니까. 각 구절의 끝이 일정한 단어(‘로’)로 끝나는 것 말입니다. 힙합계에선 이걸 ‘라임’(Rhyme)이라 부릅니다. 우리말로 하면 ‘운율’로 이해될 수 있겠네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끝말의 각운을 맞추는 재미가 제법 솔솔했던 모양입니다. 우리네 ‘시조’와 ‘판소리’ 역시 운율을 지키는 음악이었습니다. 시공간이 너무나 달랐던 우리 노래들과 힙합이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게 좀 많이 신기하다 싶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라임’의 패턴을 조금 이해하면 랩곡을 외우기가 조금 더 수월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너의 용감함을 보여줘”라고 말하는 대목도 주목할 만합니다. ‘용감한 녀석들’의 백미라 싶은 부분인데요, 이때부터 재미난 비난이 연이어 등장하지요. <개그콘서트> 전 개그맨들의 출연 권한을 갖는 서수민 PD도 개그맨 박성광에게 혼줄이 나고야마는 곳입니다. 박성광은 언젠가 그랬죠. “서수민 PD 잘들어! 니가 나 키웠다고? 내가 너 키웠다!”라고 말이죠. 이건 ‘디스’(Diss)라고 일컫는 힙합 행위에 견줄 수 있습니다. 노래로 상대를 비방하는 걸 지칭합니다.

 

사실 미국 힙합계에선 ‘디스’가 상상이상으로 살벌할 때도 있었습니다.

 

동부와 서부 힙합으로 나뉘었던 1990년대 무렵, ‘디스’를 하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서로에게 총질을 해댄 사건이 가장 유명합니다. 세계적인 힙합스타 ‘투팍’, 그리고 ‘비기’ 등 두 힙합 스타들의 디스전은 동부 힙합, 서부 힙합 뮤지션들 사이의 큰 갈등으로 비화됩니다. 결국 두 힙합 스타는 모두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됩니다.

 

힙합은 개인 감정을 넘어 사회적인 비판을 가할 때도 유용할 때도 있었습니다.

 

2004년 당시 최고의 힙합 톱스타였던 에미넘이 발표한 노래 ‘모쉬’가 대표적입니다. 노래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부시를 정면으로 겨눕니다.

 

‘모쉬’(Mosh), 이건 ‘Monster Bush’에서 ‘Mo’와 ‘sh’를 각각 따온 말입니다. 노래 제목 자체가 아예 ‘괴물 부시’였습니다. 노랫말은 직설적이었습니다. ‘이 괴물, 이 겁쟁이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아시다시피 미국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는 닮은 게 많았습니다. 부시 두 대통령은 모두 ‘팍스 아메리카나’를 목청 높여 불렀습니다. 이 시기엔 크고 작은 전쟁도 많았죠. 이들은 모두 미국 세법사(史)의 저명한 인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최상위 계층의 소득세율을 퍽이나 후하게 깎아주었던 이들입니다.

 

에미넘의 독설은 각종 인터뷰에선 더욱 가차 없었습니다. 에미넴은 “부시 자체가 대량살상무기다” “기름을 위한 전쟁은 멈춰라” “ “이라크에 가야할 사람은 젊은 이들이 아니라 부시다” 등 비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영화 <친구>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식 유머에 빗대자면 이리 되겠네요. ‘부시, 니가 가라~ 이라크~.’ 좀 썰렁한가요?

 

사실 에미넘은 더한 말도 했답니다. “부시가 백악관에서 쫓겨나는 걸 보고 싶다” “차라리 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도 했지요. 이때는 특히 부시의 재선, 대통령 선거가 있던 중요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단언컨대 우리 같으면 난리가 나도, 수백 수천 번 났을 겁니다. 연예인 출신의 정치인인 누군가는 그랬겠죠. “연예인 그만두고 정치나 하시지?”라고요. 경찰은 당장 불법선거운동을 운운하며 그를 수시로 불러댔을 것이고, 언론들은 득달같이 그를 물어뜯으려 안달이 났을 겁니다. 조직적인 댓글 세력들은 다시 인터넷에서 그를 ‘작살’내버렸을 것이고요.

 

물론 에미넘은 미국 경찰이나 검찰에 불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가수 생활 무탈하게 잘하고 있습니다. TV 출연이 중단되거나, 출연이 거부되는 일 역시 없었습니다. 뭐 한국에 에미넘 같은 가수의 출현을 기다리는 건 아닙니다. 그는 확실히 좀 셉니다.

 

아무쪼록 한국에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은 힙합 가수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한국에 사는 여러분들이라면 혹시 말하실 수 있겠습니까? “너의 용감함을 보여줘~” 이렇게 외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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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수진